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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의 고삐 (커버이미지)
    [문학]황금의 고삐
    •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인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4-02-19

    ★ 30년 만에 부활한 사강의 대표작 ★★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 교수 김인환의 유려한 번역 ★★ 소설가이자 번역가 신유진의 추천작 ★매혹적이고 요동치며 파괴적이고 날카롭다.사강을 수식하는 말일까, 사강의 작품을 설명하는 말일까.여기, 또 하나의 매혹적으로 요동치는 이야기가 있다. 사강의 스물아홉 번째 책, 『황금의 고삐』다. 그는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가 가장 잘하는 질문, 사랑에 대해 묻는다. 정확히는 사랑이라 뭉뚱그린 감정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밝힌다.ㅡ소설가 신유진사람들은 그녀가 단 한 권의 책을 쓴 작가로 남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비범한 재능은 그 삶이 타들어가는 순간에도 질주를 멈추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사강은 프랑스 문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열아홉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이 전례 없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단에 데뷔, 그해 문학비평상을 받은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섬세한 문체와 사랑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으로 오늘날에도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했다. 그런 그녀의 스물아홉 번째 소설 『황금의 고삐』가 30년 만에 페이퍼로드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인 김인환은 자신이 30년 전에 접한 책의 내용과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하루 전이었다. 그는 프랑스인 친구로부터 당시에도 문단의 사랑과 질타를 동시에 받던 사강의 책을 선물받는다. 친구는 이 작품이 여느 사강의 작품과는 다르다고 했다. 김인환 교수에게 책을 건넨 친구는 사강이 이 작품에서 여전히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깊숙이 인간의 가장 치졸한 욕망을 담고 있다고 했다. 이 작품만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한 ‘돈’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랑의 비극이 어떻게 돈으로 치환될 수 있단 말일까. 하지만 사랑에는 사랑만 있지 않다.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일 때조차도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만큼 사랑의 속성은 가장 통속적인 곳에 가닿아 있다.사랑하는 연인들의 손에는자기 자신을 옥죄는 고삐만이 남아 있다『황금의 고삐』는 우리 자신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종의 고삐를 쥐고서 타인을 끊임없이 소유하려 들고, 결국엔 그 고삐가 자기 자신의 목을 조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가난한 음악가 뱅상과 부유한 상속녀 로랑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함 없이 아름다운 한 쌍이다. 하지만 뱅상이 작곡한 곡 <소나기>가 프랑스 파리에서 유럽 더 나아가 바다 건너 아메리카까지 대히트를 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든다. 엄청난 저작권료와 함께 부를 손에 쥐게 된 뱅상은 더는 로랑스의 인형이 아닌 주체적인 한 남자로서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그가 아내가 경멸하는 친구인 코리올랑은 자신의 재무관으로 발탁하고, 그와 함께 경마장에 드나드는 건 그 시작에 불과했다. 뱅상은 로랑스의 침대, 로랑스의 아파트, 로랑스의 정원사, 로랑스의 친구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자 한다. 그는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자신의 비서이자 로랑스의 친구인 오딜의 제비꽃 향에 매혹되기도 하고, 길에서 만난 쟈닌느와의 두 시간여의 쾌락에 해방감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로랑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 뿐 그의 탈출구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그는 마치 영원히 달릴 수 있는 경주마처럼 자신의 일상을 비틀기 위해 애쓰지만, 파티가 끝난 뒤에 반드시 찾아오는 공허함처럼 다시 로랑스의 곁에 눕는 자신을 발견한다. 로랑스는 그들이 함께한 7년 동안 돈으로 뱅상을 붙잡아둘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뱅상은 그녀가 주는 경제적 안락함을 요람 삼아 삶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소설 속 인물을 바라보는 사강의 시선에는 그 어떤 연민도 질타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오직 두 사람만이 관계된 일이기에.사강의 유일하고도 완전한 재능은마지막까지 사랑이었음을사강을 수식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그녀는 모두에게 주어지는 단 한 번의 삶을 누구보다 빠르게 질주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끊임없이 멈춰 서 있었던 게 있다면 바로 문학이 아닐까. 자신이 모르는 것, 느끼지 못한 것, 체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결코 쓰지 않는다고 한 그녀에게 삶은 문학이고, 문학 역시 삶 그 자체였다. 저는 여자로서 생각하지 않았어요. 단지 책 한 권을 쓰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그것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은 이 한 권의 책이 어떤 종류의 도덕관념을 유발한 것이지요. 아주 지겨운 또 하나의 도덕관념이지요.ㅡ프랑수아즈 사강문학사상 남열호 특파원과의 대담에서 사강은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수치심까지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언제까지나 현재만을 쓰고 싶다는 그녀는 당시에도 밤새도록 글을 쓴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탁월한 재능에 치열한 노력까지 더한 작가에게 ‘프랑스 문단의 작은 악마’ 혹은 ‘단 한 권만을 완성시킨 천재’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강의 유일하고도 완전한 재능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사랑’이었다. 그녀에게 사랑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끌림과 서로를 반드시 지옥으로 몰아놓는 집착의 양가적인 속성을 지닌 모순 그 자체였다. 사강이 그린 인물들은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사랑에 빠져든 다음에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쓴다. 이때 빠져나오고자 하는 건 ‘우리’가 아닌 ‘나 자신’뿐이다. 내 모든 욕망과 자유를 사랑에 기댄 채로 헌신할 것처럼 굴지만 결국 남은 건 자기 자신만이 아는 치졸함뿐이다. 사강은 이 과정에서 사랑과 고독으로 점철된 삶을 탁월한 감각과 사유로 묘사해낸다. 그 누구도 고독 앞에서 자유를 말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독자들은 마침내 알게 될 것이다. 사강의 삶을 채우던 단 하나의 재능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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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의 장 (커버이미지)
    [문학]황금의 장
    • 폴 세비요
    • 돌도래
    •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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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잔 1 (커버이미지)
    [문학]황금잔 1
    • 헨리 제임스 지음, 조기준 외 옮김
    • 아토북
    • 2023-12-27

    〈뉴욕타임스〉 선정 20세기 100대 영미 소설『비둘기의 날개』, 『대사들』과 함께 헨리 제임스 최고작이라 일컬어지는 제3기 작품!케이트 베킨세일 주연,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영화 <러브 템테이션>의 원작!패니는 조금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손톱 크기만큼 남을 때까지 계속할 거예요.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아직 그 정도 크기로 줄지 않았어요.” 갑자기 매기에 대한 베버 부인의 의무감에 관한 생각의 실타래로 잠시 말을 멈췄다. “샬롯이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진 게 아니더라도,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으로도 왕자에게는 충분할 거예요. 왕자는 왜 그녀를 너그럽게 믿어줬을까요? 샬롯이 자신에게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강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점을 왕자가 이해하는 거 말고 뭘 했죠? 분명 샬롯에게 왕자를 훌륭하게 생각하고 신뢰에 보답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했고, 그녀가 행동의 법칙을 만들지 않으면 정말 악마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물론 샬롯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왕자의 믿음을 말하는 거예요. 중요한 순간에 그는 침묵으로 표현하죠.” ― 본문 중에서1903년과 1909년의 영국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복잡한 사랑과 배신, 음모 등을 그린 헨리 제임스의 작품. 갑부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아담 버버의 딸 매기는 이탈리아 우골리니의 왕자 아메리고와 약혼한 사이다. 이들의 만남을 주선했던 패니는 매기를 위해 단짝 친구인 샬롯과 아메리고가 과거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기로 한다. 매기와 아메리고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영국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친구 샬롯이 이들의 삶에 끼어들면서 상황을 복잡해진다. 샬롯이 매기의 아버지인 아담과 결혼한 것이다. 옛 연인에서 장모와 사위가 되어버린 아메리고와 샬롯. 너무나 각별해 끼어들 틈조차 억는 아담과 매기 부녀에게 소외감을 느끼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결국은 깊은 사이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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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잔 2 (커버이미지)
    [문학]황금잔 2
    • 헨리 제임스 지음, 조기준 외 옮김
    • 아토북
    • 2023-12-27

    〈뉴욕타임스〉 선정 20세기 100대 영미 소설『비둘기의 날개』, 『대사들』과 함께 헨리 제임스 최고작이라 일컬어지는 제3기 작품!케이트 베킨세일 주연,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영화 <러브 템테이션>의 원작!패니는 조금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손톱 크기만큼 남을 때까지 계속할 거예요.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아직 그 정도 크기로 줄지 않았어요.” 갑자기 매기에 대한 베버 부인의 의무감에 관한 생각의 실타래로 잠시 말을 멈췄다. “샬롯이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진 게 아니더라도,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으로도 왕자에게는 충분할 거예요. 왕자는 왜 그녀를 너그럽게 믿어줬을까요? 샬롯이 자신에게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강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점을 왕자가 이해하는 거 말고 뭘 했죠? 분명 샬롯에게 왕자를 훌륭하게 생각하고 신뢰에 보답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했고, 그녀가 행동의 법칙을 만들지 않으면 정말 악마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물론 샬롯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왕자의 믿음을 말하는 거예요. 중요한 순간에 그는 침묵으로 표현하죠.” ― 본문 중에서1903년과 1909년의 영국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복잡한 사랑과 배신, 음모 등을 그린 헨리 제임스의 작품. 갑부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아담 버버의 딸 매기는 이탈리아 우골리니의 왕자 아메리고와 약혼한 사이다. 이들의 만남을 주선했던 패니는 매기를 위해 단짝 친구인 샬롯과 아메리고가 과거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기로 한다. 매기와 아메리고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영국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친구 샬롯이 이들의 삶에 끼어들면서 상황을 복잡해진다. 샬롯이 매기의 아버지인 아담과 결혼한 것이다. 옛 연인에서 장모와 사위가 되어버린 아메리고와 샬롯. 너무나 각별해 끼어들 틈조차 억는 아담과 매기 부녀에게 소외감을 느끼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결국은 깊은 사이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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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채식 - 당신은,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가? (커버이미지)
    [문학]황금채식 - 당신은,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가?
    • 이진희
    • 스타그루북스
    • 2024-02-19

    #채식주의 #MZ세대 #진공묘유 #먹이사슬 #먹방 #존재함의 균형 #코로나 #펜데믹 #판타지 #로맨스 #지구인 #음식에게 #감사해‘식용가축신위.\'지방을 위패에 끼워 제대 맨 앞줄 한 가운데 올려놓았다. 그녀의 가지런한 손놀림이 꽤 능숙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처럼 어쩔 수 없이 육식을 하게 된 날, 그녀는 자정이 지나기 전에 식용가축으로 키워져 인간의 먹잇감이 된 동물들을 위로하는 기도를 올렸다. “ 축생으로 태어나 인간과의 연으로 삶을 시작하고 삶을 마쳐온 존재들에게 만일 내가, 내 가족이, 내 피붙이가, 내 조상이 태초부터 현재까지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상처를 주었다면 부디 용서를 바랍니다.” “김 부장이 오늘은 더 심했거든. 내가 고기 먹으면 사실을 말하는 저주에 걸린 사람이라고 말해 줄 수도 없구.”“저주라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사실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있었어. 고기를 먹으면 거짓말을 못하고 본심이 나오는지. 우리 집안 종손은 왜, 이런 걸 겪어야 하는지... 엄마는 그 이유를 알아?”“종손에게만 대물림되는 비서(秘書)가 있다는 거...”“비서.......라면 비밀문서?”“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건 당연히 본능 아닌가?”“기억.”“기억?”“응.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는 건, 그 음식을 먹었던 기억 때문에 자꾸 먹고 싶어지는 거더라. 생각해 봐? 넌 고기를 먹었던 기억이 없기 때문에 먹고 싶어 하지 않는 거야. “종택에.... 금이 자라고 있다... 금이 생물도 아닌데 왜 자란다고 했을까?”그냥 금이 자라는 광물인 셈 치고 생각해 봐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3개월 뒤, 다 자란 금을 캐라... 그렇다면 지금쯤이면 땅 속 어딘가에서 거의 다 자랐을 금은 수직성장을 하지 않고 옆으로만 자라는 수평성장을 하느라, 땅 위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111년이 되는 날, 갑자기 뻥 하고 솟아난다는 것인가? 3개월 후... 내년 1월이면... 111년 동안 키워진 금이 나타난다... 이 종택 어딘가에서... 70억의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크기의 거대한 금이...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늦가을 아침 태양은 주변의 습기를 증발시키고 있었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아침햇살이 두 사람 머리위로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몇 초쯤일까. 누군가가 주변의 소음을 깨끗하게 지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만 머물렀다. 그 고요함 속에서 이소의 얼굴이 부셔지듯, 부분부분 지워지듯, 흔들렸다. 빛 때문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흔들흔들... 빛의 리듬은 어느새 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가을 냄새를 잔뜩 묻힌 바람이 가늘게 불어와 유 타의 얼굴에 감겼다.... 볼에 닿은 바람이 따뜻해 유 타는 볼을 쓰다듬었다. 늦가을 아침 햇살에 갓 달구어진 따뜻한 바람... 바람결에 실크 커튼처럼 이소의 모습이 부드럽게 펄럭거리며... 펄럭거리며... 자신을 감싸더니 부드럽고 아주 느린 템포의 나른한 오르가즘에 온 몸이 젖어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이 여자...... 어지러워...’ 유 타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음식을 무기로 생각하는 그런 관점보다, 더 먼 미래에는 음식이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음식이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재라...? 무엇을 생산한다는 거죠?” “자연이요.”“자연....?”“더 명확하게 말한다면 조화로운 자연이죠.”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인간들이 돼지를 귀하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니...”“분명히 있었어요! 하지만, 인간들이 멋진 기계를 발명할수록 우리 같은 돼지들의 생명은 하찮아졌죠! 인간들은 20년씩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걸까요?” “내 마음이 당신 마음을 원해요. 이 이소라는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요. 내가 이 지구를 떠날 때까지.”“그 집에 대표님한테 허락된 공간이 아주 작다면요?”“그냥... 그 집에 내가 있으면 돼요. 그거면 돼요. 나랑 결혼해 줄래요?”“당신에게 결혼은 뭔가요?”“.....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집과 같아요.”“집....이요?”“집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담겨있죠. 그 사람의 감정, 취향, 가치관, 습관, 꿈... 그리고 상처까지도. 내가 종택을 처음 봤을 때 난 열등감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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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산강 (커버이미지)
    [문학]황산강
    • 문학철 지음
    • 책과나무
    • 2023-04-14

    현실과 소설, 2020년대와 일제강점기,두 개의 세계를 핏빛 서사로 엮어낸 문학철 장편소설 『황산강』평범하게 보이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문학 수행평가 과제를 하면서 소설 속 서사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현실을 넘나들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같은 반 조아라, 고정식, 최고운, 김유나, 박초롱, 엄민아 여섯 명은 현실에서는 진로 문제, 부모와의 갈등, 부모의 폭력, 학교 내 보이지 않는 폭력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다. 수행평가를 위해 소설을 읽은 후 까무룩 정신을 잃고 소설의 세계로 빠지게 되는데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한국전쟁이라는 한국 근대사가 배경이라 역경과 고난의 삶을 살게 된다. 소설은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한민족이 겪은 부조리를 그리면서 거기에 닿아 있는 2020년대 현실 세계의 부조리를 함께 형상화했다.소설은 여섯 편의 독립된 소설이면서 전체적으로 한 편의 소설이다. ‘아수라장’, ‘코피’, ‘모순’, ‘내 속에 하나의 우주’, ‘더덕 냄새’, ‘한없이 가벼운 붉은 사랑’은 여섯 명의 고등학생들이 각 편마다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소설 속 인물이 되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황산강』은 소설 속 소설의 이중구조, 각 편마다 독립된 소설구조, 또 각 소설의 배경이 되는 소설이 따로 있다는 특징이 있다. ‘아수라장’은 일제강점기 낙동강 연안의 농촌 양반 가문의 가야부인이 겪는 수난과 투쟁의 역사를 담은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修羅道)[《月刊文學》(1969)제8호]를 배경으로 했다. 이외에도 ‘코피’에는 김정한 소설 ‘그물 罠’(1932), ‘모순’에는 김정한 소설 ‘길벗’(1948), ‘내 속에 하나의 우주’에는 김정한 소설 ‘사밧재’(1971), ‘더덕 냄새’에는 김정한 소설 ‘산서동 뒷이야기’(1971), ‘한없이 가벼운 붉은 사랑’에는 조갑상 소설 ‘병산읍지 편찬 약사’(2016)가 바탕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한국전쟁과 그 이후까지 근대사를 다룬 작품들이다. 일제강점기의 농민운동,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때의 보도연맹 사건 등 힘없는 민중의 비극이 소설 『황산강』에도 주요 사건으로 등장한다.‘황산강’은 소설이 전개되는 현대와 서사 속 공간이다. 한반도에서 압록강 다음으로 긴 강으로 영남지방 대부분을 수계로 하는 낙동강의 옛 이름이다. 배경이 된 소설들 모두 낙동강이 주 무대다. 인물들의 대화 속 사투리와 표현들도 향토색이 짙다. 현실과 소설을 오가는 중에도 낙동강 지역이 중심 배경이 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2020년대까지 서사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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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커버이미지)
    [문학]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12-27

    밀리언셀러 작가 김진명의 『황태자비 납치사건』 개정판 출간!모두를 커다란 충격에 빠뜨린 황태자비 납치사건.범인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의 진실이다.명성황후의 관은 왜 비워진 채 장례를 치러야 했던가? 김진명의 『황태자비 납치사건』은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 뒤에 감춰졌던 진실을 탄탄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서사 방식으로 세상에 알리는 작품이다. 작가는 지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역사 왜곡에 힘을 쏟는 일본을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통해 역지사지의 입장에 서게 하면서, 독자들에게 역사 속 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도 불리는 을미사변은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일본의 군사세력이 주도하여 경복궁을 습격한 뒤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그러나 일본은 현재까지도 비인간적으로 자행되었던 명성황후 시해에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황태자비 납치사건』은 어느 날 철통 보안을 뚫고 일본 황태자비가 납치되는 사건을 서두로 시작된다. 전무후무한 사건에 투입된 민완형사 다나카는 두 명의 납치범이 연관되었음을 알게 된다. 납치 동기를 파헤치던 과정에서 그들이 한국인이며, 요구해오는 내용에 어떤 의도가 있음이 드러난다. 유례없던 황태자비 납치사건에 혼란을 겪고 있던 일본은, 납치범들이 주장하는 435호 비밀문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소설은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선다. 이들이 공개하라고 요구한 435호 비밀문서는 명성황후 시해 당시 있었던 일본의 악랄한 면면을 기록한 문서로써, 일본이 지난 역사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주체임을 증명한다. 황태자비 납치는 단순한 사건이 아닌,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한 한국인 납치범의 복수인 것이다. 『황태자비 납치사건』은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일본의 잘못된 역사의식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자국의 역사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무심하고 경솔한 태도 역시 지적한다. 역사를 외면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우리 스스로 알고 있어야만 역사 왜곡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김진명 작가의 『황태자비 납치사건』이 단순한 애국심을 느끼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직시해야 할 진실을 바탕으로 올바른 미래의 역사를 정립하도록 만들어주는 작품임을 의미한다.스에마쓰 장관님,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 건청궁 옥호루에서 민비를 시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보고를 드리고자 합니다. “죽여야만 합니다. 선생님, 제발 허락해 주십시오. 황태자비를 그냥 돌려보내면 한국인은 다시 한번 비겁한 존재가 됩니다. 선생님, 제발 이번만은 해야 합니다.”“진정한 용기는 남을 죽이는 데 있는 게 아니다. 너의 아버지도 너의 고조부도 네가 황태자비를 살해하는 걸 바라지 않으실 게다. 명성황후를 한칼에 살해하는 건 일본인들의 방식이지 절대 우리 한국인의 방식이 아니다. 그건 용기가 아니란 말이다.”-명성황후의 죽음, 그리고 일본 황태자비 납치. 백 년의 시간을 두고 일어난 정반대의 상황.저들이 명성황후를 죽인 것처럼 황태자비를 죽여야만 하는가?복수인가 용서인가. 대체 무엇이 옳은 선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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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폐한 집 1 (커버이미지)
    [문학]황폐한 집 1
    • 찰스 디킨스 (지은이), 김옥수 (옮긴이)
    • 비꽃
    • 2021-03-03

    유산 분쟁이 일면 대법원에서 유산을 묶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누구도 손댈 수 없었다. 법관과 서기와 변호사 등, 재판에 관여하는 모든 인력은 그 유산이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유산이 많으면 재판을 최대한 오래 끄는 식으로 돈벌이에 몰두하니, 재판은 수십 년간 계속되고, 소송 당사자는 막대한 유산이라는 신기루에 시달리다 정신병에 걸려서 자살하거나 병들어 죽어가기 일쑤였다. 모든 게 기만이고 사기고 거짓이었다. 기득권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권력은 그렇게 확대되고, 사회는 그렇게 병들었다. “거리마다 진창이고, 굴뚝 구멍마다 검댕이 눈송이처럼 떨어지고, 새까맣게 뿌리는 이슬비는 태양이 죽은 걸 애도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짜증 난 얼굴로 우산을 밀치고, 거리 모퉁이마다 발 디딜 곳은 사라져, 날이 밝은 다음에도(날이 밝은 적이 있다면) 수만 명이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사방이 안개다. 도시 쓰레기로 매캐한 안개가 흐른다. 안개는 해군병원에 입원한 노병의 눈과 목구멍으로 흘러들어 병실마다 숨을 헐떡인다. 가스등 불빛은 거리마다 안개에 잠기니, 뿌연 하늘에 떠오른 태양 같다.”- 본문에서찰스 디킨스 개요찰스 디킨스는 캐릭터 묘사가 극히 뛰어나며 풍자가 대단하고 문장이 화려하나, 지금까지 한국에서 번역물로 제대로 소개했다고 볼 수 없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어려운 시절》, 《골동품 상점》, 《황폐한 집》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킨스 문학의 별미를 이미지만 소개하거나 난수표로 소개한 수준이라서 독자들이 디킨스 문학을 맛보기엔 부족했다.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다. 이백 년도 넘은 1812년 2월 7일,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일 때에 영국 남부 포츠머스 외곽에서 팔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장남으로 살아간다. 형제 두 명이 어려서 죽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저택에서 집사로 일하고 할머니는 하녀장으로 일했는데, 찰스 디킨스는 할머니가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내 모두를 즐겁게 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기억한다. 아버지는 해군 경리국 하급관리로 사교적이고 유머가 풍부하나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어머니는 선량하고 밝은 성격이나 자녀에게 무정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서 계속 이사 다녔다. 외할아버지 역시 해군 경리국에서 일했으나, 자금을 횡령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디킨스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전근명령을 받아 온 가족이 채텀으로 이사해서 5년을 사는데, 도시 남쪽으로는 밀밭이 풍요롭고 북쪽으로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습지대가 황량하고, 서쪽 2㎞ 거리에는 조용한 대성당도시 로체스터가 있어, 채텀은 어린 디킨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나중에 다양한 작품에 등장한다. 디킨스에게는 이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어머니를 통해서 지식욕과 독서욕에 처음 눈떴다. 어머니는 매일 규칙적으로 오랫동안 공부를 가르쳤다.” 집에는 유모가 있어, 살인마 대위가 아내를 여럿 죽여서 파이로 만들었다든가 무서운 고양이가 밤마다 눈을 번뜩이면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어린애를 먹어치운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악마처럼 즐거워”하니, 어린 디킨스는 다양한 악몽과 공포에 시달렸다. 나중에 디킨스 자신이 “우리가 어른이 된 다음에도 황당한 공포에 가끔 빠져드는 건 어린 시절에 유모 같은 사람이 무섭게 만들어낸 이야기가 마음속에 깊숙이 틀어박혔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정도였다. 이 시절에 디킨스는 흉내를 잘 내, 유모 앞에서 즉흥 연기도 하고 누나가 연주하는 피아노 가락에 맞춰서 노래도 하니, 아버지는 장녀와 장남을 채텀에서 유명한 여인숙으로 데려가 이중창을 부르게 해서 박수갈채와 함께 다양한 음식을 얻어먹었다. 이 무렵에 굴을 처음 먹고서 어린 디킨스는 “마음이 지극히 설렜다.” 2㎞ 떨어진 로체스터 로열 극장에 가서 다양한 연극도 관람해, 30년이 지난 다음에 디킨스는 “멋진 소극장에 처음 들어선 황홀한 느낌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면서 말한다. 녹색 장막이 뚫린 구멍에서 눈빛 하나가 반짝이며 우리를 쳐다본다……. 파란 옷차림에 머리를 뒤로 길게 늘어뜨린 여주인공이 빛을 내뿜자, 모두 무서워서 마른침을 꿀꺽 삼키다 환호한다……. 코미디언이 빨간 가발을 쓰고 지하감옥에 갇혀서 재미있게 노래하는데, 나는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사람을 처음 봤다……. 녹색 장막이 내려올 때는 등잔 기름 냄새와 오렌지 껍질 냄새가 향긋했다. 어린 디킨스는 아버지를 따라 해군 공창에 가서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도 신나게 구경한다. 톱밥과 뱃밥과 돛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불러대는 노래도 듣고, 죄수들이 묵묵히 끌려가는 장면도 목격하니, 이런 장면은 《위대한 유산》에 실감 나게 등장하고, 아버지랑 주변 시골을 산책하던 경험은 《위대한 유산》에서 매형과 산책하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얼마 뒤에는 염색가게 위층에 있는 학원에 다니면서 “무시무시한 노부인이 회초리로 지배하는 세상”을 체험하니,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에서 어린 핍이 다니던 엉터리 학교로 그 분위기를 묘사한다. 아홉 살 때는 정식학교에 잠시 다니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크리켓 게임 같은 스포츠도 즐겼다.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그런 것처럼 “아버지가 이 층 조그만 방에 모아둔 책을 읽으며 ‘로더릭 랜덤’, ‘페레그린 피클’, ‘험프리 클링커’, ‘톰 존스’, ‘웨이크필드에 사는 성직자’, ‘돈키호테’, ‘질 블라스’, ‘로빈슨 크루소’ 같은 훌륭한 주인공을 친구로 사귄” 것도 이즈음이니, 디킨스는 이후로도 평생에 걸쳐서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빚이 늘면서 위기에 처하고, 어린 디킨스는 따로 살다 혼자서 역마차를 타고 가족을 찾아가는데, 이 경험은 디킨스 뇌리에 평생 틀어박혀 《올리버 트위스트》와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주인공이 어린 나이에 혼자 먼 길을 떠나는 고통으로 나타난다. 어린 디킨스가 찾아간 가족은 런던 빈민가에 살았다. 디킨스는 아버지를 “정이 많고 상냥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생활이 어려운 데다 성격까지 물러서 아들을 제대로 공부시킬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 같았다. 아들에게 제대로 성장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어린 디킨스는 다양한 책을 읽고, 채텀에서 배운 통속적인 노래를 불러서 박수갈채를 받고, 활기찬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낙으로 삼았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뒷골목이, 싸구려 술집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누추한 건물과 헐벗은 아이로 득시글거리는 거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가난한 분위기, 음식을 구걸하는 장면, 음습한 분위기 등이 터무니없이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와” 나중에 《올리버 트위스트》에 담긴다. 결국엔 아버지가 파산하자, 어머니는 없는 돈을 탈탈 털고 집을 빌리고 학교를 열어서 먹고살 방편을 모색한다. 입구에는 놋쇠로 명패를 걸고 이웃에는 안내장을 보냈다. 하지만 “학생을 받을 준비도 안 되고 누가 입학할 기미도 없었다.” 채권자들이 툭하면 찾아와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독기를 내뿜을 뿐이었다. 이윽고 가구를 하나씩 내다 팔고, 어린 디킨스는 운반 가능한 물품을 전당포로 가져가는 역할을 맡았다. 디킨스가 애독하던 책까지 중고서점으로 한 권씩 팔려나가, 온 가족은 텅 빈 방 두 칸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았다. 구두약 공장 지배인을 하던 친척이 어린 디킨스에게 공장에서 일할 걸 제안하고 부모가 받아들이니, 디킨스는 열세 살 생일이 이틀 지난 뒤에 구두약 공장에 노동자로 취업한다. 공장은 강기슭이고 쥐는 우글거렸다. 거칠고 무식한 아이들이 함께 일하는데, 디킨스를 “꼬마 신사”라고 부르며 친절하게 대했다. 하지만 디킨스는 “이들과 일하면서 정신적으로 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때 만나던 친구들과 비교했다. 많이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걸 느꼈다.” 디킨스는 공장에서 일하는 현실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그토록 가볍게 버림받다니…….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재능은 뛰어나고 머리는 팍팍 돌고 의욕은 넘치고 감성은 섬세한데, 부모는 나를 학교에 보낼 고민은커녕 동정하는 마음조차 없었다.” 디킨스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공장에서 일한 기간을 기억조차 못 할 정도니, 그 심정은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주류 공장에서 일하며 느끼던 좌절감에 그대로 묻어나온다. 아버지는 ‘채무자 감옥’에 갇히고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가족도 함께 들어가, 감옥 생활에 적응하다 못해 단조롭고 평온 무사한 분위기를 나름대로 즐기며 지낸다. 하지만 어린 디킨스는 혼자 공장에 다니며 무서운 노부인 집에서 하숙했다. 생활비를 하루 단위로 쪼개서 싸구려 빵과 치즈로 살았다. “돈이 조금 있을 때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이랑 버터 바른 빵을 먹고, 돈이 없을 때는 청과시장에서 파인애플 따위를 구경했다.” 일요일에 10㎞를 걸어서 부모 및 형제자매와 하루를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 유산으로 빚을 일부 청산한 덕분에 ‘지급불능 채무자 조례’를 적용받고 풀려나니, 조그만 셋집을 전전하며 불안하게 살면서도 가계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는 어린 디킨스가 구두약 공장에 계속 다니길 바랐으나, 아버지는 장남이 힘들게 살아가는 게 마음 아팠는지, 구두약 공장 지배인 친척과 심하게 다투고 아들을 빼내서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Wellington House Academy)에 2년 동안 보낸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장에서 돈이나 벌라”며 끊임없이 반대하고 디킨스는 어머니와 서먹한 관계를 평생 유지하니, 나중에 “나는 원한과 분노를 담아서 글을 쓰지 않는다. 모든 환경과 경험이 하나로 모여서 현재의 나로 완성되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나를 공장으로 돌려보내려고 애쓴 기억만큼은 지금도 못 잊고 앞으로도 못 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디킨스는 어린 시절에 구두약 공장에 다니며 고생한 경험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처음 언급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은 다양한 작품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어린아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묘사가 모든 작품에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비판에 민감하며, 한 번 꺼낸 말은 거두지 않는 완고한 성격도 여기에서 나왔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던 어린애가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겪는 좌절과 고통 역시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잘 나타나며 아버지는 ‘미코버’, 어머니는 법률사무소 대표의 딸로 허영심 많은 ‘도라’를 대변한다. 2년 동안 다닌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는 인근에서 평이 좋았으나 찰스 디킨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교장은 내가 만난 누구보다도 특별나게 무식한 사람으로 전제군주처럼 선생과 학생을 지배”했다. 그래도 어린 디킨스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당시에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은 찰스 디킨스가 잘생기고, 옷은 낡아도 세련된 느낌이고, 자신감이 넘치고, 머리가 빨리 돌고, 책을 많이 읽고, 아마추어 연극에 몰두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책상 서랍에다 흰쥐를 몰래 키우고, 장난도 잘 치고, 스포츠를 열심히 하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다시 빈곤에 빠져들고 디킨스는 생활 전선에 다시 뛰어든다. 열여섯 살 나이에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서 이 년간 심부름꾼으로 일하는데, 법조인 거리 중심부에 있는 사무실은 “정말 좁은 세계, 정말 따분한 세계”였다. 서류를 베끼거나 잔심부름하다 시간이 나면 “세속적인 냄새와 곰팡내 솔솔 풍기는” 법정이나 주변을 탐색했다. 한가한 오후에는 장난도 치고 흉내 내는 실력을 발휘하며 동료들과 즐겁게 지냈다. 그런 동료 가운데 하나는 “디킨스는 거리를 오가는 서민들 모습을 그대로 흉내 냈다. 과일 장수든 채소 장수든 건달이든 정말 그럴싸했다”고 기억한다. 디킨스는 동료들과 즐겁게 지내면서도 좀 더 바람직한 일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대영박물관 도서 열람증을 손에 넣어서 독학으로 다양한 지식을 쌓고 속기도 배운다.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인데, 야심만만한 청년들이 선호하던 직업으로 수입도 좋았다. 속기를 일 년 정도 혼자서 공부한 디킨스는 결국 ‘민법 박사회관’에서 진술을 기록하는 속기사로 새롭게 출발한다. 하지만 너무나 따분하고 지루한 분위기에, 연극배우로 직업을 바꾸는 고민에 몰두한다. 그래서 밤마다 극장을 찾아가 좋은 연기를 연구하다, 스무 살에는 연극 오디션까지 신청한다. 하지만 감기에 걸려서 불참하고, 다시 신청할 용기를 못 낸다. (디킨스는 소설을 쓸 때마다 등장인물을 혼자 연기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살려낸 거로 유명하다.)디킨스는 결국 스물한 살에 의회 출입기자가 된다. 신속하고 정확한 기사로 이름을 얻는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문제가 안 됐다. “낡은 하원 건물 뒷좌석에서 책상 삼아 필기하느라 무릎이 다 닳고, 낡고 비좁은 울타리에서 양 떼처럼 바싹 달라붙은 기자들과 함께 선 채로 기록하느라 신발 밑창이 다 닳았다.” 선거법 개정안과 공장법과 구빈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볼 때는 “광대 노릇이 돋보이는 정치 연극”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디킨스는 여기에서 의회와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부정부패, 빈부 격차 등 다양한 사회현상에 눈을 뜬다. 하지만 말년에 고백한 바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신문사에서 혹독한 훈련을 잘 견딘 게 내가 성공한 첫 번째 원인”이기도 하다. 이즈음에 은행가 딸과 첫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까만 머리칼에 몸집은 자그마한 미인, 마리아였다. 디킨스는 4년 동안 마리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다른 생각은 조금도 못했다.” 마리아 역시 처음에는 디킨스를 좋아했으나 경쟁자는 사방에 가득하고, 마리아 부모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디킨스 집안을 인정할 수 없고, 마리아 역시 싸늘하게 변했다. 디킨스는 “박정하고 무관심한 취급을 여러 차례 당하며” 괴로워하고 실의에 빠진 채 밤에는 잠을 못 이루고 그 집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디킨스는 한층 더 열심히 일하는 식으로 상처를 치유한다. 성공하고 싶다는 결의도 강하게 다진다. 그해 여름 의회 휴회 기간에는 저술활동을 시작하고, 그해 말에는 ‘A Dinner at Poplar Walk’를 월간지 ‘Monthly Magazine’에 발표한다. 자신이 쓴 글이 활자로 나온 걸 보고, 디킨스는 “국회의사당까지 걸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30분 정도를 보냈다.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워 두 눈에 가득 맺힌 눈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어서 비슷한 단편을 익명으로 몇 번 발표하다 34년 8월에 ‘보즈Boz’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한다. 가족이 막냇동생 오거스터스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스물세 살에는 “글솜씨도 훌륭하고 보도기자로도 탁월하다”는 이유로 ‘모닝 크로니클’ 기자에 발탁되어 풍속 전문 스케치를 기고한다. 중요한 모임이나 선거운동 등을 전국 규모로 취재할 권한도 생기니, 디킨스는 마차를 타고 밤새도록 달리는 쾌감을 마음껏 즐겼다. 흔들리는 등불에 의지하며 원고를 갈겨쓸 때는 열린 창문에서 진흙이 튀어들었다. 그래서 파란 천에 까만 벨벳을 테두리에 둘러친 망토를 사서 스페인식으로 한쪽 어깨에 걸치는 멋도 냈다. 머리도 기르고, 조끼도 멋있게 차려입었다. 아버지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때는 빚도 일부 갚아주었다. 스물네 살에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한 건 물론 유능한 기자로 이름도 높였다. ‘피크위크 페이퍼스’를 20회 연재하자고 제안받아, 전문작가로 나아가는 길도 열렸다. ‘모닝 크로니클’ 편집자 호가스는 젊은 기대주를 호가스 자택으로 초대하니, 결국 디킨스는 파티와 음악회가 열릴 때마다 참여해서 재미있는 노래와 익살로 모든 사람을 즐겁게 했다. 호가스는 세 딸이 있는데, 맏딸 캐서린은 열아홉 살, 메리는 열네 살, 조지나는 일곱 살이었다. 캐서린은 약간 통통하면서도 예쁜 얼굴에 표정이나 성격이 온화하고 상냥하며 조용한 성품이면서도 유머 감각이 있어, 디킨스와 연인으로 발전하고 몇 개월 뒤에는 결혼을 약속한다. 디킨스는 캐서린과 사귀면서도 업무에 끊임없이 쫓기느라 편지로 방문 약속을 취소하거나 늦출 때가 많았다. 하지만 화내거나 토라지거나 풀이 죽지 않도록 간청하며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그대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강조한다. 이듬해 2월에는 그동안 발표한 풍속 스케치를 모아서 첫 번째 단행본 《보즈 스케치Sketches by Boz》를 출간하고, 판매성적이 좋아서 8월에는 2판을 간행하고, 12월에는 단편소설과 스케치 20편을 모아서 속편을 출간한다. 디킨스 자신은 “생각이 짧고 미숙한” 작품으로 규정하지만, 나중에 디킨스 전기를 집필한 포스터는 《보즈 스케치》를 “런던 일상을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즐거움과 기쁨, 괴로움과 죄악까지 또렷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독자는 “시대 상황을 비롯해 거리 풍경과 풍속을 정교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풍속학자는 당시 풍속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한다. 이즈음에 ‘Chapman & Hall’에서 화가 시모어가 그린 삽화를 곁들인 단편소설을 연재하자고 제안한다. 디킨스는 오페라 대본 한 편과 희극 한 편을 집필하는 중인 데다 장편 소설까지 고려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캐서린과 결혼할 예정이라서 돈이 많이 필요할 때였다. 디킨스는 캐서린에게 보낸 편지에 밝혔듯이 “마음에 안 들지만 보수가 좋아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래서 《피크위크 클럽》 첫 호는 1836년 3월 31일 목요일에 나오고, 이틀 뒤 4월 2일에는 첼시 ‘성 루카’ 성당에서 캐서린과 결혼한다. 양쪽 집안 식구만 참석한 소박한 결혼식으로, 신혼부부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가서 신혼여행을 즐겼다. 《피크위크 클럽》은 판매가 부진한 데다 화가 시모어가 정신쇠약으로 자살하니, 디킨스는 중심인물로 부상해서 ‘해블롯 브라운’을 삽화가로 선택하고, 브라운은 ‘보즈’와 어울리도록 ‘피즈’로 필명을 정해, 두 사람은 20년 넘게 협업 관계를 유지한다. 《피크위크 클럽》은 4호부터 독자의 관심을 끌고, 선거를 재미있게 묘사한 5호가 나올 즈음에는 “보즈가 모든 사람의 이목은 물론 마음마저 사로잡아” 사람들이 서점 유리창에 딱 달라붙어서 최신호를 본다는 신문 기사까지 실리니,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디킨스는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보즈”로 명성을 떨친다. 새로운 성공에 힘입어 디킨스는 “집필 작업에 완전히 빠져든다.” 1836년 11월에 출판인 ‘리처드 벤틀리’가 월간지 편집주간을 제의하자, 디킨스는 소설 집필 계획을 잡아놓고도 제안을 받아들인다. 월급과 따로 원고료를 받는 조건이었다. 부인이 첫아이를 낳기 직전이라 가장으로 책임감을 절실하게 느낄 때였다. 이듬해 1월 6일에는 첫 아이를 낳고, 디킨스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 이름 ‘찰스’를 물려준다. 디킨스는 자신이 편집주간으로 근무하는 ‘벤틀리 미셀러니’에서 장편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본격적으로 연재한다. 공리주의에 근거해서 ‘신 빈민구제법’을 제정해, 빈자와 고아를 교구 구빈원에서 무자비하게 다루는 비인간적인 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인데, 작품에 몰두할수록 디킨스는 어린 시절에 겪은 비참한 느낌과 굶주림과 소외감에 빠져들어, 폭력과 사기가 난무하는 런던 빈민가에서 어린애가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이야기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당시의 전형적인 소설기법대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또렷하게 대비하면서도 ‘낸시’라는 독특한 인물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매춘부 사기꾼 ‘낸시’를 연민이 가득한 눈길로 묘사하는 방식에 독자는 커다란 충격과 반감을 느낀다. 하지만 새로운 해석에 빠져드는 독자도 많아, 디킨스는 월간지로 발행한 내용을 나중에 단행본으로 묶어서 발행할 때 본인 이름을 사용할 걸 단호하게 주장하고, 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작가 반열에 디킨스를 올려놓는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디킨스는 고급주택으로 이사해서 쾌적한 생활을 시작하고, 처제 메리(Mary)는 당시 풍습에 따라 그 집에 함께 살면서 아기를 돌본다. 디킨스는 이런 처제에게서 이상적인 여인상을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독특한 유대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이듬해에 처제가 병으로 죽자, 디킨스는 너무나 커다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설 연재를 중단한다. 처제 손가락에서 뺀 반지를 죽을 때까지 손가락에 낄 정도였다. 메리에 대한 그리움은 3년 뒤에 발표한 작품 《골동품 상점》에서 ‘넬리’로 나타난다. 커다란 비극에 가정은 구멍이 뚫리고, 디킨스는 오후에 친구들과 어울리며 말을 타고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피난처로 삼는다. 그러면서 여유도 생기고 사고력도 풍부하게 변하니, “상상력을 자극하려면 몸을 꾸준히 움직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였다. 평생에 걸친 문학적 조언자로 나중에 ‘찰스 디킨스 전기’까지 집필하는 존 포스터(John Poster)를 만난 것도 이즈음이다. 디킨스는 포스터와 공통점이 많았다. 나이도 같고, 중하층 계급 출신도 같고, 법률을 공부하다 저널리즘과 문학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같고, 명랑한 성격에 연극과 파티를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포스터는 디킨스에게 평생 헌신하고, 디킨스는 포스터에게 평생 의지하며 살았다. 1839년에는 《니콜라스 니클비》를 출간하고, 1841년에는 《골동품 상점》과 《바너비 러지》를 출간하면서 디킨스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올라선다. 런던 사교계에서 추앙받고, 특권 신사 클럽에 가입하고, 공공장소에서 연설하는 사례도 늘었다. 1841년에는 에든버러 시민들이 디킨스에게 경의를 표하며 에든버러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다. 20대 청년에게 “더없이 커다란 영광”으로 디킨스는 크게 감격했다. 집필활동에 왕성하던 디킨스는 서른세 살에 견문을 넓히고자 아내 캐서린과 함께 미국 방문길에 나선다. 왕도 없고 계급도 없는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잔뜩 기대하고, 뉴욕에서 3천 명이 넘는 독자가 환호하니, 디킨스는 미국과 미국인에게 감동한다. 뉴욕의 활기찬 분위기와 보스턴의 아름다우면서도 고상한 분위기에 감탄한다. 하지만 체류하는 나날이 늘어나면서 언제나 대중에게 드러나는 생활이 버겁게 다가왔다. 향수병에 시달리고 런던에 두고 온 아이들도 눈앞에 어른댔다. 남쪽으로는 필라델피아와 워싱턴과 리치먼드를 둘러보고, 서쪽으로는 루이빌과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하고, 북동쪽으로는 신시내티를 찾아가는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변하는 기후가 고통스러웠다. 열차와 배를 타거나 역마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는 것도 힘에 겨웠다. 영국인이 흔히 그렇듯, 지나치게 잘된 난방도 싫고, 담배를 질겅질겅 씹어대다 퉤퉤 뱉어내는 습관도 싫었다. 노예제도를 목격한 순간에는 “인간으로 크나큰 굴욕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화난 건 ‘국제저작권 협정’에 미국이 서명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그러니 영국 작가는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심지어 미국 출판사와 계약까지 해도, 저작권 침해를 문제 삼을 수 없으니, 디킨스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작품에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없었다.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고 환호하면서도 저작권 침해를 묵인하는 자세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문제 삼으면 신문에서는 “문학적 명성보다 달러”를, “월계관보다 화려한 조끼”를 좋아하는 “속물”이라며 비판했다. 귀국길에 오른 디킨스는 “상상 속 공화국”에 실망하고 “배고픈 40년대”로 신음하는 영국 사회에 더욱 커다란 관심을 보이며 사회 운동에 동참한다. 여성과 아동이 땅속에서 노동하는 걸 금지하는 ‘탄광 노동자 법안’을 지지하며 열정적인 글을 신문에 투고하고, 대여섯 살 어린애를 공장에서 부려먹는 현실에 “철퇴를 내리겠다”고 맹세한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페이긴 영감이 은신하던 빈민가와 빈민학교를 찾아간다. 굶주림에 허덕이느라 선악조차 구별할 수 없는 아이들을 보고서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모색한다. 그리고 1843년에 작심하고 불과 보름이란 짧은 시기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집필해서 발표한다. 디킨스는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몇 날 밤이고 캄캄한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상력을 끌어올렸다. 자본주의 병폐를 처절하게 비판하는 책은 놀라운 파문을 일으켰다. 초판 6천 부가 며칠 만에 동나고,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책이 여름철에도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며 디킨스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은 디킨스에게 엄청난 성공과 동시에 좌절을 안긴다. 호화로운 표지와 금박 장식에 삽화까지 천연색으로 넣어서 독자에겐 책값이 비싸도 그 돈으론 제작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디킨스는 출판사와 분쟁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다 결국엔 다른 출판사와 ‘크리스마스 캐럴 2탄’을 쓰기로 계약하고 선금으로 금화 이천팔백 냥을 받아서 낡은 대형마차에 가족을 태우고 이탈리아 제노바로 떠난다. 메리가 사망한 뒤에 디킨스 집으로 들어와서 아이들을 돌보던 막내 처제 조지나는 활달하고 총명한 아가씨인 데다 언니 메리를 신기할 정도로 빼닮았다. 디킨스는 조지나를 “귀염둥이”라고 불렀는데, 아내가 열 번째 아이를 낳고 무기력증에 빠져서 방구석에 틀어박히니, 둘 사이는 더욱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연극도 함께 기획하고, 산책도 함께했다. 조지나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디킨스 집안 살림을 맡았는데, 언니 캐서린이 이혼한 다음에도 디킨스가 임종하는 자리까지 지킨다. 디킨스는 1845년 7월에 가족을 데리고 런던으로 돌아와, 아마추어 연극을 준비한다. 곱슬곱슬하고 까만 수염에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겁많은 허풍쟁이 군인으로 출연하고, 연극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켜서 자선공연까지 이어진다. 디킨스는 의상과 배경과 조명과 광고 포스터까지 전담하는 건 물론 무대감독처럼 총연습까지 지휘하고, 이후 10년 동안 간헐적으로 공연하니, 디킨스에겐 불행한 가정생활의 도피처고 기분전환이며 “동료들과 함께 책을 쓰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나친 스위스가 계속 떠올라, 디킨스는 가족을 데리고 스위스로 건너가서 로잔 호숫가 조용한 집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한다. 서른여덟 살에는 뉴게이트 감옥을 방문한다. 디킨스는 감옥에서 젊은 여성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인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고 어린 나이에 거리를 떠돌다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매춘으로 접어드는 악순환을 정확히 이해한다. 후원자를 모아서 런던에 ‘집 없는 여성을 위한 쉼터’를 설립한다. 매춘부와 여성 노숙자에게 일정한 규율 아래 포근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서 사회로 복귀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흔을 눈앞에 두고 디킨스는 자신이 살아온 길이 자주 떠오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별다른 보살핌도 못 받고 고생하던 어린 시절”이 유난히 많이 떠올랐다. 구두약 공장에 다니던 굴욕적인 어린 시절을 친구 포스터에게 처음 고백한 것도 이즈음이다. 얼마 뒤에는 사랑하는 누나 ‘프랜시스 엘리자베스’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디킨스는 자신이 보낸 어린 시절에 더욱 집착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자전적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쓰기 시작한 거다. 한겨울에 야머스에 가서 광활하게 뻗어 나간 해안을 보고 강렬한 영감도 받는다. 디킨스 자신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 첫사랑과 결혼, 마흔 평생을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과 느낌과 생각을 모두 정리한다. 작가 자신과 주변을 “사실과 허구로 복잡하게 뒤섞는” 작업에 열정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나중에 “제일 좋아하는 자식은 ‘데이비드 코퍼필드’”라고 고백한다. 마흔한 살에는 ‘가정 이야기’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19개월에 걸쳐서 ‘황폐한 집’을 연재해 “내가 쓴 어떤 책보다도 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많”을 정도로 환호를 받는다. 1854년에는 런던에서 콜레라가 들끓고, 크림전쟁을 둘러싼 정부 실책은 잇따라 드러나고, 영국 북서부 프레스턴 면공업 지역에서 장기 파업이 일어나니, 디킨스는 사회 문제에 깊이 빠져들다 사장과 노동자 사이를 가로막은 거대한 벽에 몰두한다. 그래서 의회를 “국립 쓰레기장”이라 비판하고, 노동자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면서도 의리를 지키는 순박함과 인간애에 집착하며 모든 열정을 쏟아부으니, 《어려운 시절》이란 작품이 나온다. 《어려운 시절》은 크게 성공하나 비평가들 역시 크게 당황하니 이 작품은 디킨스 작품 가운데 평가가 가장 엇갈리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익 정치인 맥컬리는 “기분 나쁜 사회주의”라며 무시하지만, 유명한 비평가 존 러스킨은 디킨스 최대 작품이라고 극찬하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정독해야 한다고 평가한다. 1870년 6월 8일, 오십구 세 나이로 저택에서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온종일 쓰고 저녁 식사를 하다 쓰러져 다음 날 세상을 떠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묘역’에 묻혀 묘비에 다음 같은 글을 새긴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사람을 동정했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세상은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를 잃었다.” 디킨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노동자들은 술집에서 “우리 친구가 죽었다”며 울부짖고, 신문과 잡지는 찰스 디킨스 일대기로 도배하고, 한 신문은 부고란에 “디킨스가 발표한 소설은 언제나 화제를 불러모았다. 디킨스가 쓴 소설에는 현실정치와 사건이 그대로 담겼다. 디킨스가 소설에 담아낸 건 소설이 아니라 현실 세계였다”고 적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에 성공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였다. 디킨스는 번듯한 마차를 타고 저명인사와 교류하면서도 대다수 서민이 진흙탕을 밟고 힘겹게 살아가며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영국 최고 전성기가 남긴 아픈 그림자를 직시하면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당시에는 다섯 살 어린애가 공장에서 열두 시간씩 일하고 겨우 동전 몇 닢을 손에 쥔 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잦고, 노동자 평균수명은 겨우 스물여덟 살이었다. 디킨스는 가난한 사람을 깊이 동정하고, 사회적인 악습을 공격하고,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고 소설에 담았다. 칼 맑스가 “정치 현실과 사회현실에 대해 전문 정치인이나 정치 평론가나 학자보다 많은 진실을 말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초기 소설은 풍자가 강하지만, 후기 소설은 풍자 대신 치밀한 구성과 사회비평이 돋보인다. 디킨스 문학에서 가장 독특한 역할을 한 건 연극이다. 디킨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연극에 깊이 빠지고, 한때는 연극배우로 살아갈 염원까지 품었다면, 작가로 성공한 다음에는 아마추어 연극에 배우로 참여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총연출까지 맡았다. 원고를 집필할 때는 스스로 다양한 등장인물을 직접 연기하며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니,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대문호는 물론 수많은 독자가 감탄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배경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건이나 캐릭터를 중심으로 인물 성격을 잡아나가고, 사회현실을 대변하는 독특한 사건이 신문에 실리면 그 내용을 조사해서 작품에 싣는 식으로 허구를 구성하니, 탁월한 현실감이 작품을 지배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작품해설 및 역자 후기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한창이었다. 역마차로 인력과 물자를 수송하던 시대는 곳곳에서 건설하는 철도에 밀리기 직전이다. 사회의 근간이 뒤바뀐다. 새로운 지배구조가 부상하고, 계급 갈등이 고조되고, 빈부 격차는 크나큰 사회 문제로 나타난다. 찰스 디킨스는 영국 성공회 분위기에서 성장했으나, 기본적으로 “신자” 혹은 “종교인”이 아니다. 하지만 성서의 가르침을 삶의 지혜로 받아들이고,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려 애쓴다. 그래서 ‘억압하는 세력’을 비판하고 ‘억압받는 자’를 위로한다. 디킨스 작품에 관통하는 정신이며, 디킨스 작품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황폐한 집’ 역시 기본적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를 폭로하는 소설이다. 노아의 홍수는 인간에게서 악을 씻어내나, 그 악은 다시 짙은 안개와 매연으로 영국 전역을 집어삼키고, 대법정을 물들이고, 디킨스는 그 대법정을 처절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법정은 3심제도가 확립된 이후의 대법정이 아니다. 당시 영국은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으로 이원화됐으며, 보통법은 영주가 성문법으로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거라면, 형평법은 성문법 대신 판례와 전통에 근거해서 유언과 신탁(trust)을 판결하는 것으로, 리처드 2세가 대법원을 세우고 대법관을 임명하는 식으로 시작됐다. 그래서 분쟁이 인 재산은 대법원에 묶이고, 판결이 나올 때까지 누구도 손댈 수 없었다. 문제는 법관과 서기와 변호사 등, 재판에 관여하는 모든 인력이 그 비용을 유산에서 충당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유산 분쟁은 유일한 수입원이었으며, 따라서 유산이 많으면 재판을 최대한 오래 끄는 식으로 돈벌이에 몰두하니, 재판은 수십 년간 계속되고, 소송 당사자는 막대한 유산이라는 신기루에 시달리다 현실과 괴리된 채 정신병에 걸려서 자살하거나 죽어가기 일쑤였다. ‘황폐한 집’이 나오고 약 20여 년이 지난 1875년에 형평법은 폐지되고 보통법과 합쳐지나, 아직도 영미법에 ‘판례법’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다. ‘대법정 소송 중이다’는 의미의 ‘in chancery’는 ‘궁지에 빠졌다’는 숙어로 영미권에서 아직도 사용하니, 당시 병폐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악을 증오하는 인간의 선의는 나쁜 제도를 고치자는 개혁운동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이기적 속성을 이겨내고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이타적 유형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황폐한 집’에 등장하는 개혁론자들은 개혁 주장을 밥벌이로 삼고 주변을 희생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기적 속성을 이겨내려고 애쓰는 후자는 개혁론자들을 후원하면서도 그 한계를 지적한다. 1859년 3월 말에 디킨스는 ‘가정 이야기 - Household Words’라는 주간지를 창간한다. 30년대는 ‘피크위크 페이퍼스’와 ‘올리버 트위스트’, 40년대는 ‘골동품 상점’에서 ‘데이비드 코퍼필드’까지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뒤였다. ‘가정 이야기’는 사회 문제를 다양하고 깊이 있게 파악해서 보도하는 게 목적이었다. 디킨스 역시 사회 이슈를 직접 조사하고 취재해서 독자들에게 제공했다. 그러다 1852년 3월부터 1853년 9월까지 19개월에 걸쳐서 ‘가정 이야기’에 ‘황폐한 집’을 연재하니, 당연히 ‘가정 이야기’에서 조사하고 취재한 내용은 새로운 소설의 재료가 될 수밖에 없었다. 팩트에 근거한 픽션이 나오고, ‘황폐한 집’은 본격적인 폭로 소설이 되는 배경이다. ‘버킷’이라는 등장인물 역시 디킨스가 여러 번 인터뷰한 런던 경시청 수사관 ‘Jack Whicher’를, ‘스킴폴’이라는 황당한 인간은 수필가 ‘Leigh Hunt’를 모델로 했다. 재미있는 건 ‘자연 발화’에 대한 디킨스의 입장인데, 당시 과학계는 인간의 몸뚱이가 저절로 타오르는 ‘자연 발화’를 불가능한 현상으로 보았다. 그런데도 디킨스는 작품 중에 “사악한 몸뚱이가 사악한 알코올을 잔뜩 쑤셔 넣다 썩어 문드러지는” 현상으로 묘사하고, 서문에서는 ‘자연 발화’의 다양한 사례를 역설한다. 그래서 ‘사악한 제도’가 썩어 문드러져서 불에 타서 없어지기를 바라는 디킨스의 소망으로 해석하는 평론가도 많다.‘황폐한 집’은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에스더는 천연두에 걸려서 미모를 잃고 좌절하나, 우드코트는 성실하고 이타적인 삶을 보면서 사랑을 꽃피운다. 에이다는 첫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나, 상대는 미망에 빠져서 고생하다 죽어간다. 데드록 귀부인은 젊을 적 로맨스로 파멸하고, 거피는 자만심에 들뜬 로맨스로 인간의 교만과 허영을 코미디처럼 펼쳐나간다.‘황폐한 집’은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아니, 최초의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뭐가 뭔지 파악하기 바쁜데, 두 번째 읽을 때는 전체 그림이 그려지고, 등장인물의 언행이 오밀조밀하게 연결되면서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디킨스는 다른 작품에서 캐릭터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사물을 묘사하는 천재성이 돋보인다면, 이 작품에서는 전체를 파악한 다음에 비로소 각각의 이면에 담긴 의미가 드러나는 성숙한 천재성이 새롭게 가미되는 것이다. 현대 최고의 추리소설가 스티븐 킹이 “가장 좋아하는 책 10선”으로 꼽을 정도다. 작품에는 은유도 가득하다. 하인이 쓴 가발도, 법정에서 재판관과 변호사 등이 쓴 가발도 든 게 없는 머릿속을 숨기려는 것이며, 런던에 가득한 안개와 매연은,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모두를 평등하게 한다. 진흙탕을 파헤쳐서 고물을 긁어모으는 크룩은 ‘대법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그걸 잔뜩 쌓아놓은 고물상은 ‘대법정’으로 불린다. 서류를 잔뜩 만들기만 하고 판결은 않는 대법정이나, 고물을 잔뜩 쌓아놓기만 하는 고물상이나, 사람 가죽을 벗기는 대법관이나 고양이 가죽을 벗기는 크룩이나 비슷한 것이다. 대법정 서류는 하나같이 폐지로 변해서 크룩한테 가고, 그 속에서는 소송을 마무리할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는 것도 흥미롭다.디킨스는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법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법은 인간이 바람직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질서를 보장해야지, 착취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그랬듯, 한국에서도 법이 독재정권의 시녀일 때가 있었다. 6·25 때는 법조차 없이 시민과 농민을 잡아다 죽이더니, 군부독재 때 경찰과 검사는 민주인사를 불법연행하고 감금하고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해서 감옥에 가두는 공로로 승진하고, 판사는 민주인사를 범죄자로 판결해서 자리를 유지하며 특권을 누렸다. 그렇게 죽이고 조작한 사건을 이제 한국에서도 밝혀야 한다. (조작 사건이 여럿 밝혀지긴 했지만 아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과거에 조작한 수많은 사건의 진실을, 그로 인해 병들고 죽어간 수많은 인물의 고통을 밝히고 사죄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진실에 근거한 역사적 정당성이 생겨날 것이다. 편집자의 말번역은 원문에 담긴 내용과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이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풍자와 유머와 화려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묘사하는 특징이 탁월하다. 따라서 문장은 어렵고 복잡한데,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은 한글 어법을 무시한 영어 사대주의에다 오역까지 넘쳐서 극히 어렵고 난해했다. 고전문학은 다양한 경쟁과 도전 속에서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며 백 년 이상 살아남은 작품이니, ‘재미와 감동’은 물론 ‘술술 읽히는 느낌’ 역시 어느 작품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기능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엉터리로 번역해서 독자를 괴롭히며 쫓아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문학은 독서가 시작이다. 고전문학을 제대로 해석해서 한글 어법에 정확히 담아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가꿀 원형을 제시해야 한다. 광복 35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우리는 ‘일본어 중역 몰아내기 운동’을 했다. 35년이 또 지났다. 이제는 ‘우리말 살리는 번역운동’을 할 때가 왔다.‘도서출판 비꽃’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 어법에 합당한 번역을 추구하며,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고전문학을 새롭게 담아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공동체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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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폐한 집 2 (커버이미지)
    [문학]황폐한 집 2
    • 찰스 디킨스 (지은이), 김옥수 (옮긴이)
    • 비꽃
    • 2021-03-03

    유산 분쟁이 일면 대법원에서 유산을 묶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누구도 손댈 수 없었다. 법관과 서기와 변호사 등, 재판에 관여하는 모든 인력은 그 유산이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유산이 많으면 재판을 최대한 오래 끄는 식으로 돈벌이에 몰두하니, 재판은 수십 년간 계속되고, 소송 당사자는 막대한 유산이라는 신기루에 시달리다 정신병에 걸려서 자살하거나 병들어 죽어가기 일쑤였다. 모든 게 기만이고 사기고 거짓이었다. 기득권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권력은 그렇게 확대되고, 사회는 그렇게 병들었다. “거리마다 진창이고, 굴뚝 구멍마다 검댕이 눈송이처럼 떨어지고, 새까맣게 뿌리는 이슬비는 태양이 죽은 걸 애도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짜증 난 얼굴로 우산을 밀치고, 거리 모퉁이마다 발 디딜 곳은 사라져, 날이 밝은 다음에도(날이 밝은 적이 있다면) 수만 명이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사방이 안개다. 도시 쓰레기로 매캐한 안개가 흐른다. 안개는 해군병원에 입원한 노병의 눈과 목구멍으로 흘러들어 병실마다 숨을 헐떡인다. 가스등 불빛은 거리마다 안개에 잠기니, 뿌연 하늘에 떠오른 태양 같다.”- 본문에서찰스 디킨스 개요찰스 디킨스는 캐릭터 묘사가 극히 뛰어나며 풍자가 대단하고 문장이 화려하나, 지금까지 한국에서 번역물로 제대로 소개했다고 볼 수 없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어려운 시절》, 《골동품 상점》, 《황폐한 집》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킨스 문학의 별미를 이미지만 소개하거나 난수표로 소개한 수준이라서 독자들이 디킨스 문학을 맛보기엔 부족했다.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다. 이백 년도 넘은 1812년 2월 7일,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일 때에 영국 남부 포츠머스 외곽에서 팔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장남으로 살아간다. 형제 두 명이 어려서 죽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저택에서 집사로 일하고 할머니는 하녀장으로 일했는데, 찰스 디킨스는 할머니가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내 모두를 즐겁게 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기억한다. 아버지는 해군 경리국 하급관리로 사교적이고 유머가 풍부하나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어머니는 선량하고 밝은 성격이나 자녀에게 무정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서 계속 이사 다녔다. 외할아버지 역시 해군 경리국에서 일했으나, 자금을 횡령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디킨스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전근명령을 받아 온 가족이 채텀으로 이사해서 5년을 사는데, 도시 남쪽으로는 밀밭이 풍요롭고 북쪽으로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습지대가 황량하고, 서쪽 2㎞ 거리에는 조용한 대성당도시 로체스터가 있어, 채텀은 어린 디킨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나중에 다양한 작품에 등장한다. 디킨스에게는 이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어머니를 통해서 지식욕과 독서욕에 처음 눈떴다. 어머니는 매일 규칙적으로 오랫동안 공부를 가르쳤다.” 집에는 유모가 있어, 살인마 대위가 아내를 여럿 죽여서 파이로 만들었다든가 무서운 고양이가 밤마다 눈을 번뜩이면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어린애를 먹어치운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악마처럼 즐거워”하니, 어린 디킨스는 다양한 악몽과 공포에 시달렸다. 나중에 디킨스 자신이 “우리가 어른이 된 다음에도 황당한 공포에 가끔 빠져드는 건 어린 시절에 유모 같은 사람이 무섭게 만들어낸 이야기가 마음속에 깊숙이 틀어박혔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정도였다. 이 시절에 디킨스는 흉내를 잘 내, 유모 앞에서 즉흥 연기도 하고 누나가 연주하는 피아노 가락에 맞춰서 노래도 하니, 아버지는 장녀와 장남을 채텀에서 유명한 여인숙으로 데려가 이중창을 부르게 해서 박수갈채와 함께 다양한 음식을 얻어먹었다. 이 무렵에 굴을 처음 먹고서 어린 디킨스는 “마음이 지극히 설렜다.” 2㎞ 떨어진 로체스터 로열 극장에 가서 다양한 연극도 관람해, 30년이 지난 다음에 디킨스는 “멋진 소극장에 처음 들어선 황홀한 느낌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면서 말한다. 녹색 장막이 뚫린 구멍에서 눈빛 하나가 반짝이며 우리를 쳐다본다……. 파란 옷차림에 머리를 뒤로 길게 늘어뜨린 여주인공이 빛을 내뿜자, 모두 무서워서 마른침을 꿀꺽 삼키다 환호한다……. 코미디언이 빨간 가발을 쓰고 지하감옥에 갇혀서 재미있게 노래하는데, 나는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사람을 처음 봤다……. 녹색 장막이 내려올 때는 등잔 기름 냄새와 오렌지 껍질 냄새가 향긋했다. 어린 디킨스는 아버지를 따라 해군 공창에 가서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도 신나게 구경한다. 톱밥과 뱃밥과 돛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불러대는 노래도 듣고, 죄수들이 묵묵히 끌려가는 장면도 목격하니, 이런 장면은 《위대한 유산》에 실감 나게 등장하고, 아버지랑 주변 시골을 산책하던 경험은 《위대한 유산》에서 매형과 산책하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얼마 뒤에는 염색가게 위층에 있는 학원에 다니면서 “무시무시한 노부인이 회초리로 지배하는 세상”을 체험하니,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에서 어린 핍이 다니던 엉터리 학교로 그 분위기를 묘사한다. 아홉 살 때는 정식학교에 잠시 다니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크리켓 게임 같은 스포츠도 즐겼다.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그런 것처럼 “아버지가 이 층 조그만 방에 모아둔 책을 읽으며 ‘로더릭 랜덤’, ‘페레그린 피클’, ‘험프리 클링커’, ‘톰 존스’, ‘웨이크필드에 사는 성직자’, ‘돈키호테’, ‘질 블라스’, ‘로빈슨 크루소’ 같은 훌륭한 주인공을 친구로 사귄” 것도 이즈음이니, 디킨스는 이후로도 평생에 걸쳐서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빚이 늘면서 위기에 처하고, 어린 디킨스는 따로 살다 혼자서 역마차를 타고 가족을 찾아가는데, 이 경험은 디킨스 뇌리에 평생 틀어박혀 《올리버 트위스트》와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주인공이 어린 나이에 혼자 먼 길을 떠나는 고통으로 나타난다. 어린 디킨스가 찾아간 가족은 런던 빈민가에 살았다. 디킨스는 아버지를 “정이 많고 상냥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생활이 어려운 데다 성격까지 물러서 아들을 제대로 공부시킬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 같았다. 아들에게 제대로 성장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어린 디킨스는 다양한 책을 읽고, 채텀에서 배운 통속적인 노래를 불러서 박수갈채를 받고, 활기찬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낙으로 삼았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뒷골목이, 싸구려 술집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누추한 건물과 헐벗은 아이로 득시글거리는 거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가난한 분위기, 음식을 구걸하는 장면, 음습한 분위기 등이 터무니없이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와” 나중에 《올리버 트위스트》에 담긴다. 결국엔 아버지가 파산하자, 어머니는 없는 돈을 탈탈 털고 집을 빌리고 학교를 열어서 먹고살 방편을 모색한다. 입구에는 놋쇠로 명패를 걸고 이웃에는 안내장을 보냈다. 하지만 “학생을 받을 준비도 안 되고 누가 입학할 기미도 없었다.” 채권자들이 툭하면 찾아와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독기를 내뿜을 뿐이었다. 이윽고 가구를 하나씩 내다 팔고, 어린 디킨스는 운반 가능한 물품을 전당포로 가져가는 역할을 맡았다. 디킨스가 애독하던 책까지 중고서점으로 한 권씩 팔려나가, 온 가족은 텅 빈 방 두 칸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았다. 구두약 공장 지배인을 하던 친척이 어린 디킨스에게 공장에서 일할 걸 제안하고 부모가 받아들이니, 디킨스는 열세 살 생일이 이틀 지난 뒤에 구두약 공장에 노동자로 취업한다. 공장은 강기슭이고 쥐는 우글거렸다. 거칠고 무식한 아이들이 함께 일하는데, 디킨스를 “꼬마 신사”라고 부르며 친절하게 대했다. 하지만 디킨스는 “이들과 일하면서 정신적으로 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때 만나던 친구들과 비교했다. 많이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걸 느꼈다.” 디킨스는 공장에서 일하는 현실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그토록 가볍게 버림받다니…….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재능은 뛰어나고 머리는 팍팍 돌고 의욕은 넘치고 감성은 섬세한데, 부모는 나를 학교에 보낼 고민은커녕 동정하는 마음조차 없었다.” 디킨스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공장에서 일한 기간을 기억조차 못 할 정도니, 그 심정은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주류 공장에서 일하며 느끼던 좌절감에 그대로 묻어나온다. 아버지는 ‘채무자 감옥’에 갇히고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가족도 함께 들어가, 감옥 생활에 적응하다 못해 단조롭고 평온 무사한 분위기를 나름대로 즐기며 지낸다. 하지만 어린 디킨스는 혼자 공장에 다니며 무서운 노부인 집에서 하숙했다. 생활비를 하루 단위로 쪼개서 싸구려 빵과 치즈로 살았다. “돈이 조금 있을 때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이랑 버터 바른 빵을 먹고, 돈이 없을 때는 청과시장에서 파인애플 따위를 구경했다.” 일요일에 10㎞를 걸어서 부모 및 형제자매와 하루를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 유산으로 빚을 일부 청산한 덕분에 ‘지급불능 채무자 조례’를 적용받고 풀려나니, 조그만 셋집을 전전하며 불안하게 살면서도 가계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는 어린 디킨스가 구두약 공장에 계속 다니길 바랐으나, 아버지는 장남이 힘들게 살아가는 게 마음 아팠는지, 구두약 공장 지배인 친척과 심하게 다투고 아들을 빼내서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Wellington House Academy)에 2년 동안 보낸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장에서 돈이나 벌라”며 끊임없이 반대하고 디킨스는 어머니와 서먹한 관계를 평생 유지하니, 나중에 “나는 원한과 분노를 담아서 글을 쓰지 않는다. 모든 환경과 경험이 하나로 모여서 현재의 나로 완성되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나를 공장으로 돌려보내려고 애쓴 기억만큼은 지금도 못 잊고 앞으로도 못 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디킨스는 어린 시절에 구두약 공장에 다니며 고생한 경험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처음 언급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은 다양한 작품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어린아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묘사가 모든 작품에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비판에 민감하며, 한 번 꺼낸 말은 거두지 않는 완고한 성격도 여기에서 나왔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던 어린애가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겪는 좌절과 고통 역시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잘 나타나며 아버지는 ‘미코버’, 어머니는 법률사무소 대표의 딸로 허영심 많은 ‘도라’를 대변한다. 2년 동안 다닌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는 인근에서 평이 좋았으나 찰스 디킨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교장은 내가 만난 누구보다도 특별나게 무식한 사람으로 전제군주처럼 선생과 학생을 지배”했다. 그래도 어린 디킨스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당시에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은 찰스 디킨스가 잘생기고, 옷은 낡아도 세련된 느낌이고, 자신감이 넘치고, 머리가 빨리 돌고, 책을 많이 읽고, 아마추어 연극에 몰두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책상 서랍에다 흰쥐를 몰래 키우고, 장난도 잘 치고, 스포츠를 열심히 하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다시 빈곤에 빠져들고 디킨스는 생활 전선에 다시 뛰어든다. 열여섯 살 나이에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서 이 년간 심부름꾼으로 일하는데, 법조인 거리 중심부에 있는 사무실은 “정말 좁은 세계, 정말 따분한 세계”였다. 서류를 베끼거나 잔심부름하다 시간이 나면 “세속적인 냄새와 곰팡내 솔솔 풍기는” 법정이나 주변을 탐색했다. 한가한 오후에는 장난도 치고 흉내 내는 실력을 발휘하며 동료들과 즐겁게 지냈다. 그런 동료 가운데 하나는 “디킨스는 거리를 오가는 서민들 모습을 그대로 흉내 냈다. 과일 장수든 채소 장수든 건달이든 정말 그럴싸했다”고 기억한다. 디킨스는 동료들과 즐겁게 지내면서도 좀 더 바람직한 일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대영박물관 도서 열람증을 손에 넣어서 독학으로 다양한 지식을 쌓고 속기도 배운다.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인데, 야심만만한 청년들이 선호하던 직업으로 수입도 좋았다. 속기를 일 년 정도 혼자서 공부한 디킨스는 결국 ‘민법 박사회관’에서 진술을 기록하는 속기사로 새롭게 출발한다. 하지만 너무나 따분하고 지루한 분위기에, 연극배우로 직업을 바꾸는 고민에 몰두한다. 그래서 밤마다 극장을 찾아가 좋은 연기를 연구하다, 스무 살에는 연극 오디션까지 신청한다. 하지만 감기에 걸려서 불참하고, 다시 신청할 용기를 못 낸다. (디킨스는 소설을 쓸 때마다 등장인물을 혼자 연기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살려낸 거로 유명하다.)디킨스는 결국 스물한 살에 의회 출입기자가 된다. 신속하고 정확한 기사로 이름을 얻는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문제가 안 됐다. “낡은 하원 건물 뒷좌석에서 책상 삼아 필기하느라 무릎이 다 닳고, 낡고 비좁은 울타리에서 양 떼처럼 바싹 달라붙은 기자들과 함께 선 채로 기록하느라 신발 밑창이 다 닳았다.” 선거법 개정안과 공장법과 구빈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볼 때는 “광대 노릇이 돋보이는 정치 연극”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디킨스는 여기에서 의회와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부정부패, 빈부 격차 등 다양한 사회현상에 눈을 뜬다. 하지만 말년에 고백한 바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신문사에서 혹독한 훈련을 잘 견딘 게 내가 성공한 첫 번째 원인”이기도 하다. 이즈음에 은행가 딸과 첫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까만 머리칼에 몸집은 자그마한 미인, 마리아였다. 디킨스는 4년 동안 마리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다른 생각은 조금도 못했다.” 마리아 역시 처음에는 디킨스를 좋아했으나 경쟁자는 사방에 가득하고, 마리아 부모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디킨스 집안을 인정할 수 없고, 마리아 역시 싸늘하게 변했다. 디킨스는 “박정하고 무관심한 취급을 여러 차례 당하며” 괴로워하고 실의에 빠진 채 밤에는 잠을 못 이루고 그 집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디킨스는 한층 더 열심히 일하는 식으로 상처를 치유한다. 성공하고 싶다는 결의도 강하게 다진다. 그해 여름 의회 휴회 기간에는 저술활동을 시작하고, 그해 말에는 ‘A Dinner at Poplar Walk’를 월간지 ‘Monthly Magazine’에 발표한다. 자신이 쓴 글이 활자로 나온 걸 보고, 디킨스는 “국회의사당까지 걸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30분 정도를 보냈다.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워 두 눈에 가득 맺힌 눈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어서 비슷한 단편을 익명으로 몇 번 발표하다 34년 8월에 ‘보즈Boz’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한다. 가족이 막냇동생 오거스터스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스물세 살에는 “글솜씨도 훌륭하고 보도기자로도 탁월하다”는 이유로 ‘모닝 크로니클’ 기자에 발탁되어 풍속 전문 스케치를 기고한다. 중요한 모임이나 선거운동 등을 전국 규모로 취재할 권한도 생기니, 디킨스는 마차를 타고 밤새도록 달리는 쾌감을 마음껏 즐겼다. 흔들리는 등불에 의지하며 원고를 갈겨쓸 때는 열린 창문에서 진흙이 튀어들었다. 그래서 파란 천에 까만 벨벳을 테두리에 둘러친 망토를 사서 스페인식으로 한쪽 어깨에 걸치는 멋도 냈다. 머리도 기르고, 조끼도 멋있게 차려입었다. 아버지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때는 빚도 일부 갚아주었다. 스물네 살에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한 건 물론 유능한 기자로 이름도 높였다. ‘피크위크 페이퍼스’를 20회 연재하자고 제안받아, 전문작가로 나아가는 길도 열렸다. ‘모닝 크로니클’ 편집자 호가스는 젊은 기대주를 호가스 자택으로 초대하니, 결국 디킨스는 파티와 음악회가 열릴 때마다 참여해서 재미있는 노래와 익살로 모든 사람을 즐겁게 했다. 호가스는 세 딸이 있는데, 맏딸 캐서린은 열아홉 살, 메리는 열네 살, 조지나는 일곱 살이었다. 캐서린은 약간 통통하면서도 예쁜 얼굴에 표정이나 성격이 온화하고 상냥하며 조용한 성품이면서도 유머 감각이 있어, 디킨스와 연인으로 발전하고 몇 개월 뒤에는 결혼을 약속한다. 디킨스는 캐서린과 사귀면서도 업무에 끊임없이 쫓기느라 편지로 방문 약속을 취소하거나 늦출 때가 많았다. 하지만 화내거나 토라지거나 풀이 죽지 않도록 간청하며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그대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강조한다. 이듬해 2월에는 그동안 발표한 풍속 스케치를 모아서 첫 번째 단행본 《보즈 스케치Sketches by Boz》를 출간하고, 판매성적이 좋아서 8월에는 2판을 간행하고, 12월에는 단편소설과 스케치 20편을 모아서 속편을 출간한다. 디킨스 자신은 “생각이 짧고 미숙한” 작품으로 규정하지만, 나중에 디킨스 전기를 집필한 포스터는 《보즈 스케치》를 “런던 일상을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즐거움과 기쁨, 괴로움과 죄악까지 또렷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독자는 “시대 상황을 비롯해 거리 풍경과 풍속을 정교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풍속학자는 당시 풍속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한다. 이즈음에 ‘Chapman & Hall’에서 화가 시모어가 그린 삽화를 곁들인 단편소설을 연재하자고 제안한다. 디킨스는 오페라 대본 한 편과 희극 한 편을 집필하는 중인 데다 장편 소설까지 고려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캐서린과 결혼할 예정이라서 돈이 많이 필요할 때였다. 디킨스는 캐서린에게 보낸 편지에 밝혔듯이 “마음에 안 들지만 보수가 좋아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래서 《피크위크 클럽》 첫 호는 1836년 3월 31일 목요일에 나오고, 이틀 뒤 4월 2일에는 첼시 ‘성 루카’ 성당에서 캐서린과 결혼한다. 양쪽 집안 식구만 참석한 소박한 결혼식으로, 신혼부부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가서 신혼여행을 즐겼다. 《피크위크 클럽》은 판매가 부진한 데다 화가 시모어가 정신쇠약으로 자살하니, 디킨스는 중심인물로 부상해서 ‘해블롯 브라운’을 삽화가로 선택하고, 브라운은 ‘보즈’와 어울리도록 ‘피즈’로 필명을 정해, 두 사람은 20년 넘게 협업 관계를 유지한다. 《피크위크 클럽》은 4호부터 독자의 관심을 끌고, 선거를 재미있게 묘사한 5호가 나올 즈음에는 “보즈가 모든 사람의 이목은 물론 마음마저 사로잡아” 사람들이 서점 유리창에 딱 달라붙어서 최신호를 본다는 신문 기사까지 실리니,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디킨스는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보즈”로 명성을 떨친다. 새로운 성공에 힘입어 디킨스는 “집필 작업에 완전히 빠져든다.” 1836년 11월에 출판인 ‘리처드 벤틀리’가 월간지 편집주간을 제의하자, 디킨스는 소설 집필 계획을 잡아놓고도 제안을 받아들인다. 월급과 따로 원고료를 받는 조건이었다. 부인이 첫아이를 낳기 직전이라 가장으로 책임감을 절실하게 느낄 때였다. 이듬해 1월 6일에는 첫 아이를 낳고, 디킨스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 이름 ‘찰스’를 물려준다. 디킨스는 자신이 편집주간으로 근무하는 ‘벤틀리 미셀러니’에서 장편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본격적으로 연재한다. 공리주의에 근거해서 ‘신 빈민구제법’을 제정해, 빈자와 고아를 교구 구빈원에서 무자비하게 다루는 비인간적인 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인데, 작품에 몰두할수록 디킨스는 어린 시절에 겪은 비참한 느낌과 굶주림과 소외감에 빠져들어, 폭력과 사기가 난무하는 런던 빈민가에서 어린애가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이야기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당시의 전형적인 소설기법대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또렷하게 대비하면서도 ‘낸시’라는 독특한 인물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매춘부 사기꾼 ‘낸시’를 연민이 가득한 눈길로 묘사하는 방식에 독자는 커다란 충격과 반감을 느낀다. 하지만 새로운 해석에 빠져드는 독자도 많아, 디킨스는 월간지로 발행한 내용을 나중에 단행본으로 묶어서 발행할 때 본인 이름을 사용할 걸 단호하게 주장하고, 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작가 반열에 디킨스를 올려놓는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디킨스는 고급주택으로 이사해서 쾌적한 생활을 시작하고, 처제 메리(Mary)는 당시 풍습에 따라 그 집에 함께 살면서 아기를 돌본다. 디킨스는 이런 처제에게서 이상적인 여인상을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독특한 유대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이듬해에 처제가 병으로 죽자, 디킨스는 너무나 커다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설 연재를 중단한다. 처제 손가락에서 뺀 반지를 죽을 때까지 손가락에 낄 정도였다. 메리에 대한 그리움은 3년 뒤에 발표한 작품 《골동품 상점》에서 ‘넬리’로 나타난다. 커다란 비극에 가정은 구멍이 뚫리고, 디킨스는 오후에 친구들과 어울리며 말을 타고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피난처로 삼는다. 그러면서 여유도 생기고 사고력도 풍부하게 변하니, “상상력을 자극하려면 몸을 꾸준히 움직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였다. 평생에 걸친 문학적 조언자로 나중에 ‘찰스 디킨스 전기’까지 집필하는 존 포스터(John Poster)를 만난 것도 이즈음이다. 디킨스는 포스터와 공통점이 많았다. 나이도 같고, 중하층 계급 출신도 같고, 법률을 공부하다 저널리즘과 문학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같고, 명랑한 성격에 연극과 파티를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포스터는 디킨스에게 평생 헌신하고, 디킨스는 포스터에게 평생 의지하며 살았다. 1839년에는 《니콜라스 니클비》를 출간하고, 1841년에는 《골동품 상점》과 《바너비 러지》를 출간하면서 디킨스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올라선다. 런던 사교계에서 추앙받고, 특권 신사 클럽에 가입하고, 공공장소에서 연설하는 사례도 늘었다. 1841년에는 에든버러 시민들이 디킨스에게 경의를 표하며 에든버러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다. 20대 청년에게 “더없이 커다란 영광”으로 디킨스는 크게 감격했다. 집필활동에 왕성하던 디킨스는 서른세 살에 견문을 넓히고자 아내 캐서린과 함께 미국 방문길에 나선다. 왕도 없고 계급도 없는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잔뜩 기대하고, 뉴욕에서 3천 명이 넘는 독자가 환호하니, 디킨스는 미국과 미국인에게 감동한다. 뉴욕의 활기찬 분위기와 보스턴의 아름다우면서도 고상한 분위기에 감탄한다. 하지만 체류하는 나날이 늘어나면서 언제나 대중에게 드러나는 생활이 버겁게 다가왔다. 향수병에 시달리고 런던에 두고 온 아이들도 눈앞에 어른댔다. 남쪽으로는 필라델피아와 워싱턴과 리치먼드를 둘러보고, 서쪽으로는 루이빌과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하고, 북동쪽으로는 신시내티를 찾아가는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변하는 기후가 고통스러웠다. 열차와 배를 타거나 역마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는 것도 힘에 겨웠다. 영국인이 흔히 그렇듯, 지나치게 잘된 난방도 싫고, 담배를 질겅질겅 씹어대다 퉤퉤 뱉어내는 습관도 싫었다. 노예제도를 목격한 순간에는 “인간으로 크나큰 굴욕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화난 건 ‘국제저작권 협정’에 미국이 서명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그러니 영국 작가는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심지어 미국 출판사와 계약까지 해도, 저작권 침해를 문제 삼을 수 없으니, 디킨스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작품에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없었다.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고 환호하면서도 저작권 침해를 묵인하는 자세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문제 삼으면 신문에서는 “문학적 명성보다 달러”를, “월계관보다 화려한 조끼”를 좋아하는 “속물”이라며 비판했다. 귀국길에 오른 디킨스는 “상상 속 공화국”에 실망하고 “배고픈 40년대”로 신음하는 영국 사회에 더욱 커다란 관심을 보이며 사회 운동에 동참한다. 여성과 아동이 땅속에서 노동하는 걸 금지하는 ‘탄광 노동자 법안’을 지지하며 열정적인 글을 신문에 투고하고, 대여섯 살 어린애를 공장에서 부려먹는 현실에 “철퇴를 내리겠다”고 맹세한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페이긴 영감이 은신하던 빈민가와 빈민학교를 찾아간다. 굶주림에 허덕이느라 선악조차 구별할 수 없는 아이들을 보고서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모색한다. 그리고 1843년에 작심하고 불과 보름이란 짧은 시기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집필해서 발표한다. 디킨스는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몇 날 밤이고 캄캄한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상력을 끌어올렸다. 자본주의 병폐를 처절하게 비판하는 책은 놀라운 파문을 일으켰다. 초판 6천 부가 며칠 만에 동나고,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책이 여름철에도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며 디킨스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은 디킨스에게 엄청난 성공과 동시에 좌절을 안긴다. 호화로운 표지와 금박 장식에 삽화까지 천연색으로 넣어서 독자에겐 책값이 비싸도 그 돈으론 제작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디킨스는 출판사와 분쟁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다 결국엔 다른 출판사와 ‘크리스마스 캐럴 2탄’을 쓰기로 계약하고 선금으로 금화 이천팔백 냥을 받아서 낡은 대형마차에 가족을 태우고 이탈리아 제노바로 떠난다. 메리가 사망한 뒤에 디킨스 집으로 들어와서 아이들을 돌보던 막내 처제 조지나는 활달하고 총명한 아가씨인 데다 언니 메리를 신기할 정도로 빼닮았다. 디킨스는 조지나를 “귀염둥이”라고 불렀는데, 아내가 열 번째 아이를 낳고 무기력증에 빠져서 방구석에 틀어박히니, 둘 사이는 더욱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연극도 함께 기획하고, 산책도 함께했다. 조지나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디킨스 집안 살림을 맡았는데, 언니 캐서린이 이혼한 다음에도 디킨스가 임종하는 자리까지 지킨다. 디킨스는 1845년 7월에 가족을 데리고 런던으로 돌아와, 아마추어 연극을 준비한다. 곱슬곱슬하고 까만 수염에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겁많은 허풍쟁이 군인으로 출연하고, 연극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켜서 자선공연까지 이어진다. 디킨스는 의상과 배경과 조명과 광고 포스터까지 전담하는 건 물론 무대감독처럼 총연습까지 지휘하고, 이후 10년 동안 간헐적으로 공연하니, 디킨스에겐 불행한 가정생활의 도피처고 기분전환이며 “동료들과 함께 책을 쓰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나친 스위스가 계속 떠올라, 디킨스는 가족을 데리고 스위스로 건너가서 로잔 호숫가 조용한 집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한다. 서른여덟 살에는 뉴게이트 감옥을 방문한다. 디킨스는 감옥에서 젊은 여성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인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고 어린 나이에 거리를 떠돌다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매춘으로 접어드는 악순환을 정확히 이해한다. 후원자를 모아서 런던에 ‘집 없는 여성을 위한 쉼터’를 설립한다. 매춘부와 여성 노숙자에게 일정한 규율 아래 포근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서 사회로 복귀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흔을 눈앞에 두고 디킨스는 자신이 살아온 길이 자주 떠오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별다른 보살핌도 못 받고 고생하던 어린 시절”이 유난히 많이 떠올랐다. 구두약 공장에 다니던 굴욕적인 어린 시절을 친구 포스터에게 처음 고백한 것도 이즈음이다. 얼마 뒤에는 사랑하는 누나 ‘프랜시스 엘리자베스’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디킨스는 자신이 보낸 어린 시절에 더욱 집착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자전적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쓰기 시작한 거다. 한겨울에 야머스에 가서 광활하게 뻗어 나간 해안을 보고 강렬한 영감도 받는다. 디킨스 자신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 첫사랑과 결혼, 마흔 평생을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과 느낌과 생각을 모두 정리한다. 작가 자신과 주변을 “사실과 허구로 복잡하게 뒤섞는” 작업에 열정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나중에 “제일 좋아하는 자식은 ‘데이비드 코퍼필드’”라고 고백한다. 마흔한 살에는 ‘가정 이야기’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19개월에 걸쳐서 ‘황폐한 집’을 연재해 “내가 쓴 어떤 책보다도 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많”을 정도로 환호를 받는다. 1854년에는 런던에서 콜레라가 들끓고, 크림전쟁을 둘러싼 정부 실책은 잇따라 드러나고, 영국 북서부 프레스턴 면공업 지역에서 장기 파업이 일어나니, 디킨스는 사회 문제에 깊이 빠져들다 사장과 노동자 사이를 가로막은 거대한 벽에 몰두한다. 그래서 의회를 “국립 쓰레기장”이라 비판하고, 노동자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면서도 의리를 지키는 순박함과 인간애에 집착하며 모든 열정을 쏟아부으니, 《어려운 시절》이란 작품이 나온다. 《어려운 시절》은 크게 성공하나 비평가들 역시 크게 당황하니 이 작품은 디킨스 작품 가운데 평가가 가장 엇갈리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익 정치인 맥컬리는 “기분 나쁜 사회주의”라며 무시하지만, 유명한 비평가 존 러스킨은 디킨스 최대 작품이라고 극찬하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정독해야 한다고 평가한다. 1870년 6월 8일, 오십구 세 나이로 저택에서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온종일 쓰고 저녁 식사를 하다 쓰러져 다음 날 세상을 떠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묘역’에 묻혀 묘비에 다음 같은 글을 새긴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사람을 동정했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세상은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를 잃었다.” 디킨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노동자들은 술집에서 “우리 친구가 죽었다”며 울부짖고, 신문과 잡지는 찰스 디킨스 일대기로 도배하고, 한 신문은 부고란에 “디킨스가 발표한 소설은 언제나 화제를 불러모았다. 디킨스가 쓴 소설에는 현실정치와 사건이 그대로 담겼다. 디킨스가 소설에 담아낸 건 소설이 아니라 현실 세계였다”고 적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에 성공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였다. 디킨스는 번듯한 마차를 타고 저명인사와 교류하면서도 대다수 서민이 진흙탕을 밟고 힘겹게 살아가며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영국 최고 전성기가 남긴 아픈 그림자를 직시하면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당시에는 다섯 살 어린애가 공장에서 열두 시간씩 일하고 겨우 동전 몇 닢을 손에 쥔 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잦고, 노동자 평균수명은 겨우 스물여덟 살이었다. 디킨스는 가난한 사람을 깊이 동정하고, 사회적인 악습을 공격하고,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고 소설에 담았다. 칼 맑스가 “정치 현실과 사회현실에 대해 전문 정치인이나 정치 평론가나 학자보다 많은 진실을 말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초기 소설은 풍자가 강하지만, 후기 소설은 풍자 대신 치밀한 구성과 사회비평이 돋보인다. 디킨스 문학에서 가장 독특한 역할을 한 건 연극이다. 디킨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연극에 깊이 빠지고, 한때는 연극배우로 살아갈 염원까지 품었다면, 작가로 성공한 다음에는 아마추어 연극에 배우로 참여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총연출까지 맡았다. 원고를 집필할 때는 스스로 다양한 등장인물을 직접 연기하며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니,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대문호는 물론 수많은 독자가 감탄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배경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건이나 캐릭터를 중심으로 인물 성격을 잡아나가고, 사회현실을 대변하는 독특한 사건이 신문에 실리면 그 내용을 조사해서 작품에 싣는 식으로 허구를 구성하니, 탁월한 현실감이 작품을 지배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작품해설 및 역자 후기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한창이었다. 역마차로 인력과 물자를 수송하던 시대는 곳곳에서 건설하는 철도에 밀리기 직전이다. 사회의 근간이 뒤바뀐다. 새로운 지배구조가 부상하고, 계급 갈등이 고조되고, 빈부 격차는 크나큰 사회 문제로 나타난다. 찰스 디킨스는 영국 성공회 분위기에서 성장했으나, 기본적으로 “신자” 혹은 “종교인”이 아니다. 하지만 성서의 가르침을 삶의 지혜로 받아들이고,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려 애쓴다. 그래서 ‘억압하는 세력’을 비판하고 ‘억압받는 자’를 위로한다. 디킨스 작품에 관통하는 정신이며, 디킨스 작품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황폐한 집’ 역시 기본적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를 폭로하는 소설이다. 노아의 홍수는 인간에게서 악을 씻어내나, 그 악은 다시 짙은 안개와 매연으로 영국 전역을 집어삼키고, 대법정을 물들이고, 디킨스는 그 대법정을 처절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법정은 3심제도가 확립된 이후의 대법정이 아니다. 당시 영국은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으로 이원화됐으며, 보통법은 영주가 성문법으로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거라면, 형평법은 성문법 대신 판례와 전통에 근거해서 유언과 신탁(trust)을 판결하는 것으로, 리처드 2세가 대법원을 세우고 대법관을 임명하는 식으로 시작됐다. 그래서 분쟁이 인 재산은 대법원에 묶이고, 판결이 나올 때까지 누구도 손댈 수 없었다. 문제는 법관과 서기와 변호사 등, 재판에 관여하는 모든 인력이 그 비용을 유산에서 충당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유산 분쟁은 유일한 수입원이었으며, 따라서 유산이 많으면 재판을 최대한 오래 끄는 식으로 돈벌이에 몰두하니, 재판은 수십 년간 계속되고, 소송 당사자는 막대한 유산이라는 신기루에 시달리다 현실과 괴리된 채 정신병에 걸려서 자살하거나 죽어가기 일쑤였다. ‘황폐한 집’이 나오고 약 20여 년이 지난 1875년에 형평법은 폐지되고 보통법과 합쳐지나, 아직도 영미법에 ‘판례법’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다. ‘대법정 소송 중이다’는 의미의 ‘in chancery’는 ‘궁지에 빠졌다’는 숙어로 영미권에서 아직도 사용하니, 당시 병폐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악을 증오하는 인간의 선의는 나쁜 제도를 고치자는 개혁운동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이기적 속성을 이겨내고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이타적 유형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황폐한 집’에 등장하는 개혁론자들은 개혁 주장을 밥벌이로 삼고 주변을 희생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기적 속성을 이겨내려고 애쓰는 후자는 개혁론자들을 후원하면서도 그 한계를 지적한다. 1859년 3월 말에 디킨스는 ‘가정 이야기 - Household Words’라는 주간지를 창간한다. 30년대는 ‘피크위크 페이퍼스’와 ‘올리버 트위스트’, 40년대는 ‘골동품 상점’에서 ‘데이비드 코퍼필드’까지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뒤였다. ‘가정 이야기’는 사회 문제를 다양하고 깊이 있게 파악해서 보도하는 게 목적이었다. 디킨스 역시 사회 이슈를 직접 조사하고 취재해서 독자들에게 제공했다. 그러다 1852년 3월부터 1853년 9월까지 19개월에 걸쳐서 ‘가정 이야기’에 ‘황폐한 집’을 연재하니, 당연히 ‘가정 이야기’에서 조사하고 취재한 내용은 새로운 소설의 재료가 될 수밖에 없었다. 팩트에 근거한 픽션이 나오고, ‘황폐한 집’은 본격적인 폭로 소설이 되는 배경이다. ‘버킷’이라는 등장인물 역시 디킨스가 여러 번 인터뷰한 런던 경시청 수사관 ‘Jack Whicher’를, ‘스킴폴’이라는 황당한 인간은 수필가 ‘Leigh Hunt’를 모델로 했다. 재미있는 건 ‘자연 발화’에 대한 디킨스의 입장인데, 당시 과학계는 인간의 몸뚱이가 저절로 타오르는 ‘자연 발화’를 불가능한 현상으로 보았다. 그런데도 디킨스는 작품 중에 “사악한 몸뚱이가 사악한 알코올을 잔뜩 쑤셔 넣다 썩어 문드러지는” 현상으로 묘사하고, 서문에서는 ‘자연 발화’의 다양한 사례를 역설한다. 그래서 ‘사악한 제도’가 썩어 문드러져서 불에 타서 없어지기를 바라는 디킨스의 소망으로 해석하는 평론가도 많다.‘황폐한 집’은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에스더는 천연두에 걸려서 미모를 잃고 좌절하나, 우드코트는 성실하고 이타적인 삶을 보면서 사랑을 꽃피운다. 에이다는 첫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나, 상대는 미망에 빠져서 고생하다 죽어간다. 데드록 귀부인은 젊을 적 로맨스로 파멸하고, 거피는 자만심에 들뜬 로맨스로 인간의 교만과 허영을 코미디처럼 펼쳐나간다.‘황폐한 집’은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아니, 최초의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뭐가 뭔지 파악하기 바쁜데, 두 번째 읽을 때는 전체 그림이 그려지고, 등장인물의 언행이 오밀조밀하게 연결되면서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디킨스는 다른 작품에서 캐릭터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사물을 묘사하는 천재성이 돋보인다면, 이 작품에서는 전체를 파악한 다음에 비로소 각각의 이면에 담긴 의미가 드러나는 성숙한 천재성이 새롭게 가미되는 것이다. 현대 최고의 추리소설가 스티븐 킹이 “가장 좋아하는 책 10선”으로 꼽을 정도다. 작품에는 은유도 가득하다. 하인이 쓴 가발도, 법정에서 재판관과 변호사 등이 쓴 가발도 든 게 없는 머릿속을 숨기려는 것이며, 런던에 가득한 안개와 매연은,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모두를 평등하게 한다. 진흙탕을 파헤쳐서 고물을 긁어모으는 크룩은 ‘대법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그걸 잔뜩 쌓아놓은 고물상은 ‘대법정’으로 불린다. 서류를 잔뜩 만들기만 하고 판결은 않는 대법정이나, 고물을 잔뜩 쌓아놓기만 하는 고물상이나, 사람 가죽을 벗기는 대법관이나 고양이 가죽을 벗기는 크룩이나 비슷한 것이다. 대법정 서류는 하나같이 폐지로 변해서 크룩한테 가고, 그 속에서는 소송을 마무리할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는 것도 흥미롭다.디킨스는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법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법은 인간이 바람직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질서를 보장해야지, 착취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그랬듯, 한국에서도 법이 독재정권의 시녀일 때가 있었다. 6·25 때는 법조차 없이 시민과 농민을 잡아다 죽이더니, 군부독재 때 경찰과 검사는 민주인사를 불법연행하고 감금하고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해서 감옥에 가두는 공로로 승진하고, 판사는 민주인사를 범죄자로 판결해서 자리를 유지하며 특권을 누렸다. 그렇게 죽이고 조작한 사건을 이제 한국에서도 밝혀야 한다. (조작 사건이 여럿 밝혀지긴 했지만 아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과거에 조작한 수많은 사건의 진실을, 그로 인해 병들고 죽어간 수많은 인물의 고통을 밝히고 사죄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진실에 근거한 역사적 정당성이 생겨날 것이다. 편집자의 말번역은 원문에 담긴 내용과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이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풍자와 유머와 화려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묘사하는 특징이 탁월하다. 따라서 문장은 어렵고 복잡한데,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은 한글 어법을 무시한 영어 사대주의에다 오역까지 넘쳐서 극히 어렵고 난해했다. 고전문학은 다양한 경쟁과 도전 속에서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며 백 년 이상 살아남은 작품이니, ‘재미와 감동’은 물론 ‘술술 읽히는 느낌’ 역시 어느 작품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기능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엉터리로 번역해서 독자를 괴롭히며 쫓아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문학은 독서가 시작이다. 고전문학을 제대로 해석해서 한글 어법에 정확히 담아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가꿀 원형을 제시해야 한다. 광복 35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우리는 ‘일본어 중역 몰아내기 운동’을 했다. 35년이 또 지났다. 이제는 ‘우리말 살리는 번역운동’을 할 때가 왔다.‘도서출판 비꽃’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 어법에 합당한 번역을 추구하며,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고전문학을 새롭게 담아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공동체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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